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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

[청흑] 오메가버스 vol.1~3

청흑/오메가버스AU

BGM :: 악토버 - Disjunction









오메가버스

vol.1






첫 회지이자 아오미네 온리전에서 발행했던 <야만의 시대>의 초안. 이 때는 조금 더 절망적이었고 아오미네가 더 망나니 같았음. 이래저래 수정하다가 최종적으로는 이 설정을 묻었는데 사실 난 이렇게 막말하는 아오미네가 좋다! 완전 좋다.... 이게 내가 오메가버스를 처음 이해하고 썼던 조각글인데저 때는 진짜 오메가버스로 달달한 일상물 같은 건 못쓰는 줄 알았다. 지금도 달달한 분위기로는 잘 못쓰지만.떡치라고 만들어준 세계관이니 최애컾 떡치는 거 보고 싶을 때마다 찾게 되는...







가난에 시달리던 나츠코는 난폭한 성질 탓에 도망간 부인이 셋이나 되는 남자의 네 번째 부인이 되었다. 두 사람에게 혼인 신고 따위의 법적 절차는 중요치 않았다. 나츠코는 약을 구할 돈이 필요했고 남자는 폭력 같은 행위의 상대를 원했기 때문이다. 결혼이 아닌 계약, 나츠코는 열 살짜리 피붙이가 자신을 향해 쏟아내는 악담에 ‘너도 나와 다를 것 없는 더러운 피를 가지고 있다.’고 응수했다. 그리고 그런 나츠코는 아이가 스무 살이 되던 해에 수많은 알파에게 둘러싸인 채로 숨을 거뒀다. 불에 타 뼛가루가 된 나츠코는 자신을 꼭 빼어 닮은 아이의 손에 의해 눈이 쌓인 거리에 뿌려졌다.



“상부상조. 이런 말 알아, 테츠?”



몸을 바짝 붙여 앉은 아오미네가 꼭 잠긴 쿠로코의 바지 사이로 큰 손을 밀어 넣자 쿠로코는 맞닿은 무릎을 덜덜 떨었다. 수 없이 겪은 손길에도 시작할 때만큼은 순진한 처녀 같이 반응하는 꼴이 우스운지 아오미네는 살짝 비웃었다. 저녁 식사 전 아오미네가 성기 안쪽까지 구석구석 발라 놓은 페로몬 연고는 이미 구멍에서 떨어진 애액에 섞여 든 채였다. 아오미네가 손 끝으로 꼭 조인 바지춤에 눌려 완전히 서지 못하고 둥글게 말린 성기를 훑자 쿠로코는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아오미네의 단단한 팔뚝을 붙들었다.



“어차피 너도 아버지한테 보지 벌리는 건 싫고.”

“…읏…!”

“나는 오메가 년들 구멍에 박는 게 싫으니까.”



이런 게 아주 훌륭한 상부상조지.


자비 없이 성기를 조여 쥔 아오미네의 손은 엄지를 세워 집요할 정도로 성기 선단을 괴롭히다말고 쑥 빠져 나왔다. 아오미네는 페로몬과 가장 유사한 향으로 만든 연고를 히트 사이클 기간이 아닐 때마다 쿠로코의 몸 곳곳에 발라 놓았다. 마치 ‘나는 페로몬 향에 취했을 뿐.’ 이라고 선을 긋는 것처럼 말이다.



쿠로코의 어머니이자 남자의 네 번째 부인이었던 나츠코는 갓 태어난 아이마저도 침을 뱉는다는 말 따위로 조롱받는 오메가였다. 쿠로코는 나츠코가 오메가임을 자각하지 못하고 맞았던 첫 히트 사이클 기간에 학교 선생님이었던 남자에게 꼼짝없이 당해 낳은 아이였다. 그를 닮았다던 쿠로코의 하늘빛 눈동자를 향한 나츠코의 시선은 싸늘하다 못해 흉흉할 정도였다. 쿠로코는 점점 자랄수록 몸을 팔아 억제제를 모으는 나츠코를 혐오했고 나츠코는 자신을 겁탈했던 그를 대신해 쿠로코를 증오했다.


마약과 섞은 억제제를 팔에 주사할 때마다 나츠코는 눈을 까뒤집고 침을 줄줄 흘리곤 했다. 혐오스러운 광경을 바라보던 쿠로코는 자신이 오롯한 오메가가 아니라는 것에 안심했다. 오메가의 피를 받아 태어난 쿠로코가 자신을 더럽게 바라볼 때마다 나츠코는 히히덕거리며 쿠로코를 비웃곤 했다. 그리고 그런 비웃음은 딱 맞아 떨어졌다.


베타와 오메가의 자식인 베오 혼혈은 히트 사이클 주기가 길고 페로몬 향이 짙지 않은 것이 특징이었지만 쿠로코는 베오 혼혈 치고 페로몬 향이 짙어 나츠코가 맞는 억제 주사를 함께 맞아야 했기 때문이다. 살짝 부딪히기만 해도 툭툭 터지는 약한 혈관을 뚫고 억제제가 들어갈 때마다 쿠로코는 울었고 나츠코는 그런 쿠로코를 향해 박수까지 치며 웃었다.


억제제와 마약이 섞인 주사를 맞고 침대에 풀썩 쓰러진 쿠로코가 잠이 들 무렵 쿠로코를 품에 안은 나츠코는 자장가를 부르는 것 마냥 달콤하게 속삭였다.


‘욕망에 취해 제자를 겁탈한 베타, 색을 질질 흘리고 다니는 경멸스러운 오메가의 피가 섞인 더러운 나의 아들.’



나츠코의 죽음은 갑작스러웠다. 나츠코는 행위를 할 때마다 숨이 멎기 직전까지 목이 졸리고 울퉁불퉁한 성기 모형이 음부와 항문에 처박히는 가학적인 행위에도 십 년을 버텼던 여자였다. 나츠코를 자신을 만족시키는 명기라 칭하던 남자는 알파들이 주관하는 난교 파티에 나츠코와 동행했고 나츠코는 그 곳에서 약에 취해 가학적인 관계를 갖던 중 목숨을 잃었다.


나츠코의 죽음은 쿠로코에게 생각보다 많은 영향을 주었다. 나츠코가 긁어모았던 억제제는 일 년도 되지 않아 모두 떨어지고 말았다. 열 다섯 이후로 학교조차 다니지 못하고 궁전같은 집에 처박혀 살았던 쿠로코에게는 비싸고 귀하다 소문난 억제제를 구할 방법이 없었다.


억제제를 주사하지 못한 채 처음 히트 사이클을 겪었던 날 밤, 남자는 징그러울 정도로 축축하게 젖은 혀로 입술을 핥으며 노골적으로 쿠로코를 바라보았다. 거센 저항은 소용없었다.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네 어미가 죽었던 발정난 개의 소굴로 내던져 버릴 거란다. 누런 이를 드러낸 남자의 끔찍한 협박 탓이었다.


나츠코가 살아생전 매일 밤마다 묶인 채로 남자의 성기를 받던 침대 위에서 바지와 속옷만 벗겨진 채로 겁탈 당할 뻔 했던 쿠로코를 구한 것은 남자의 아들이었다. 베타였던, 남자의 두 번째 부인이 낳은 남자의 유일한 피붙이.



남자의 아들이었던 아오미네가 쿠로코를 구해준 이후로 남자는 다섯 번째 부인을 들였다. 나츠코와 똑 닮은 오메가종인 여자는 남자와의 행위 뒤에 옷 한 올을 걸치지도 않고 온 집안을 누비며 깔깔 웃고 다니는 고약한 취미가 있었다. 다 큰 남자의 방을 벌컥 열며 정액으로 젖은 엉덩이를 흔드는 바람에 쿠로코는 늘 베란다 구석에 숨어 여자를 피했다.

그러던 중, 베란다 밖에 앉아 양 무릎을 모으고 쪼그려 있던 쿠로코를 발견한 여자는 쿠로코를 따라 무릎을 꿇고 앉아선 허연 젖을 쿠로코의 얼굴 위로 부비며 몸을 떨었다. 여자의 젖가슴에 파묻힌 얼굴을 격렬하게 내젓던 쿠로코는 제 코 사이로 흘러 들어오는 향에 취해 몸을 일으켜 방을 나서는 여자의 등을 보며 마른 침을 꼴깍 삼키기 바빴다.


‘아오미네…군, 해…주세요….’


펄펄 끓는 색욕을 누르지 못한 쿠로코가 달려 든 곳은 아오미네의 방, 침대 위였다.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 오른 채로 뻣뻣하게 선 성기에 아오미네의 손을 가져다 대고 벅벅 문지르던 쿠로코는 잠에 취한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던 아오미네에게 곧 잡혀 먹듯 삼켜졌다.



“너는 네가 오메가 년들하고 다를 게 없는 것 같지?”



아오미네가 제 허벅지 위로 쿠로코를 앉히며 귓가에 속삭였다. 후끈거리는 귓바퀴를 물어뜯기라도 할 것처럼 씹던 아오미네는 목이 늘어난 티셔츠를 쇄골까지 끌어 올리며 몸을 부비는 쿠로코를 바라보곤 헛헛하게 웃었다.



“테츠 너는 정말이지, 베타 피가 섞인 것 같지가 않다고.”

“…흑…으응!”

“베타는 이 쪽 구멍을 너처럼 쓰질 않거든.”



성기를 잡고 괴롭히던 아오미네의 손이 어느샌가 축축하게 젖어든 구멍 틈을 밀고 들어가자 쿠로코는 비명을 내질렀다. 안쪽을 무차별적으로 벌리던 검지와 중지 사이로 약지와 새끼까지 밀려들어가자 페로몬 향에 취한 쿠로코가 입을 벌리고 헉헉댔다.



“발정 난 짐승처럼 남자한테 달려드는 꼴 하고는.”



꼭 자신은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 마냥 말하는 아오미네의 바지춤은 이미 불룩하게 솟아 있었다.






vol.2






속된 말로 싼 것 처럼 구는 걸 많이 즐겨쓰는 편은 아닌데, 가끔씩은 저런 설정도 좋음. 아오미네 앞에서 저렇게 도발하는 건 좋음. (최애컾 콩깍지 능력이 안되서 못쓰지만 개인적으로 느와르물이라면 따지지 않고 볼 정도로 좋아해서 조직에 몸 담구고 있는 아오미네도 자주 쓰는 것 같다. 첫 중편?이었던 교도소물 때도 그랬고.







쿠로코는 조직에서 버려진 개라고 불렸다. 그렇다고 조직 내의 버려진 개라는 게 쿠로코에게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었다. 개는 조직 내에 수 없이 많다. 구역 싸움 중 칼에 찔려 시력을 잃은 스무 살 신입도 막 버려진 개로 불리기 시작한 참이다. 눈을 잃거나 수족을 잃어 조직에서 입지를 잃은 조직원과 쿠로코가 다른 것이 있다면 어떤 용도의 ‘개’냐는 것이었다.



“새로운 오메가가 필요해.”

“장마담에게 연락해보겠습니다.”



담배 끝을 이로 잘근잘근 씹던 겐다의 말에 아오미네가 재떨이를 받치며 대꾸했다. 깨끗하게 닦인 투명색의 재떨이 위로 여전히 불길이 달라붙은 잿더미가 툭툭 떨궈지자 겐다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럼 소유하고 있는 오메가 처리는….”

“아아. 그건 다이키가 알아서 해줘. 이미 진절나게 뚫어 놓은 놈들 일로 골머리 썩고 싶은 생각은 없어.”



소유하고 있는 빌딩의 가치만 천 억대에 가까운 재벌 3세 겐다가 인연 없던 조직 일에 손을 가져다 댄 것은 그저 푼돈을 가지고 용돈 벌이나 해 볼 심산으로 시작한 사채업이 쏠쏠한 장사 수완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엄청난 이율로 돈을 불리며 기세등등하게 인생을 즐기던 겐다는 문득 더러운 일을 대신 맡아 줄 이들을 필요로 했다. 뒷골목의 이름 없는 깡패들이 속속들이 모여들었고 아오미네도 그 중 한 놈이었다.



“오메가들은 너무 쉽게 질려. 이렇게 몇 달마다 갈아줘야 되니까 귀찮기도 하고.”

“…항상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늘 오메가만 찾으시죠.”

“그거야 뒤처리가 깔끔하니까.”



겐다의 대답에 아오미네는 뒤처리야 본인이 하는 게 아니니 그럴 만도 하겠다고 생각했다. 이 밑에서 일을 시작한 것도 다섯 해가 지났다. 처음엔 돈을 갚지 못하고 도망친 채무자를 상대로 손가락을 잘라 보험금을 타내게 하거나 가족을 상대로 협박하는 더러운 일을 도맡았다. 채무자 무리에게 길거리 한 가운데에서 칼을 맞고 난 뒤로는, 트라우마로 인해 채무자 관리에서 손을 떼었다. 그 후 겐다가 운영하는 윤락 업소의 매니저로 일했고, 그러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겐다가 ‘구멍’이라 칭하는 이들을 관리하고 있었던 거다.



“쿠로코는 자네한테 관심이 있어서 내가 안 뚫었어.”

“…괜한 일을 하셨습니다.”



남은 담배꽁초를 재떨이 위로 비벼 끈 겐다가 아오미네의 단호한 음성에 목까지 뒤로 젖히며 크게 웃었다.



“손맛이 좋은 년이야.”



비죽 웃는 겐다의 얼굴에 욕망이 그득 묻어 있어 아오미네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겐다가 가난과 멸시에 시달리는 오메가를 거두기 시작했던 것은 사채업을 시작했던 시점과 엇비슷했다. 윤락 업소에서 맡았던 오메가의 향에 취한 뒤로 겐다는 전국 각지에서 소문난 오메가를 불러들였고 이내 버리고, 다시 새로운 오메가를 불러들이며 난잡한 성생활을 이어갔다. 겐다의 가학적인 섹스를 견디지 못한 몇몇 오메가가 탈출을 감행하다 걸린 뒤로 아오미네는 윤락업소의 매니저에서 오메가 관리인이 되었다. 이따금 조직원들은 ‘더러운 오메가에게 홀리지 말라.’고 경고하면서도 ‘오메가 구멍이 그렇게 쫄깃하다더라.’며 웃기지도 않은 농담을 하곤 했다. 그 때마다 아오미네는 마치 자신은 고고한 선비라도 되는 듯 비웃음만 슬쩍 흘리는 게 고작이었다.




&




욕정에 파묻힌 개들이 모인 곳. 겐다가 원하는 창부들로 득실대는 이곳에는 수 십 명에 달하는 오메가들이 둥지를 트고 있다. 겐다는 이 가게에서 술을 마시며 마음에 드는 오메가를 골라잡아 온 몸이 상처 투성이가 될 때까지 가학적인 섹스를 하곤 했다.


‘페로몬이 줄줄 흐르는 더러운 오메가.’


겐다는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는 오메가들에게 거꾸로 든 양주병 입구를 들어 머리 위로 술을 쏟아 부으면서 비아냥거리는 남자였다. 정작 그런 오메가들에게 발목이 잡힌 것은 본인이면서.


따분한 생각을 하던 아오미네는 껌뻑거리는 무대 위 조명을 바라보다 소파 위로 타고 흐르는 무게감에 고개를 돌렸다. 아오미네와 눈이 마주친 쿠로코는 한 손에 우겨 쥔 두 개의 와인 잔과 나머지 손에 쥔 와인 잔을 들어 보이며 어깨를 으쓱했다.



“또 뒤처리하러 왔어요?”

“…내가 오는 게 다른 이유가 있었던가.”

“난 또 나라도 만나러 온 줄 알았죠.”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지 말라며 선을 그은 아오미네가 한숨을 내쉬었다. 눈앞에 앉은 남자는 조직 내에서 가장 유명하고 또 가장 비참한 남자였다. 하류층으로 불리는 오메가 중에서도 가장 하층민으로 살던 쿠로코는 억제제를 위해 처음으로 몸을 팔았고 그러다 겐다의 가게까지 굴러 들어왔다. 제 머리 위로 술을 쏟아 부으며 모욕스런 말까지 뱉던 겐다를 앞에 둔 쿠로코는 겐다의 뒤에서 아무 표정 없이 서 있는 아오미네를 가르키며 ‘저 남자와 하고 싶다.’고 말했다.


‘오메가 주제에 당돌한 년’이라며 크게 웃던 겐다 너머로 쿠로코에게 시선을 맞춘 아오미네는 어떤 표정도 내비치지 않았고, 쿠로코는 그런 아오미네를 바라보며 생글생글 웃고만 있었다. 그 날을 시작으로 겐다는 쿠로코를 한 번도 안지 않았다. 모두들 쿠로코에게 겐다에게 잘 못 보였기 때문이라고 손가락질 했지만, 함께 가게에 들어왔던 오메가들이 다시 빈민촌으로 내쫓길 때도 쿠로코는 쫓겨나지 않았다.


겐다의 창부이면서 한 번도 안기지 못한 버려진 개. 자신을 내리깎는 치욕적인 별명에도 쿠로코는 단 한 번도 싫다 말하지 않았다.



“왜요? 이번엔 나도 쫓아내래요?”

“심심한 소리하기는….”

“아니면 다행이죠.”



실없는 소리를 하며 와인 잔 입구를 검지 끝으로 꾹 누른 채 빙글빙글 돌리는 쿠로코에게서 시선을 거둔 아오미네가 이내 담배를 물었다. 주머니를 더듬어 봤지만 라이터가 잡히지 않아 성난 눈으로 쿠로코를 노려보자 쿠로코는 제 주머니에서 꺼낸 지퍼 라이터를 얄밉게 흔들어보였다. 가게로 들어올 적 아오미네와 부딪혔을 때 빼간 모양이었다.



“여긴 금연이에요.”

“약은 되고, 담배는 안 되고?”



황당한 표정을 지우지 못하고 물음을 던진 아오미네에게 쿠로코는 얄미운 미소로 화답했다. 손에 쥐고 있던 라이터를 주머니 안쪽으로 다시 밀어 넣은 쿠로코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계속해서 와인 잔을 만져댔다.



“손 좀 가만히 못 둬?”

“…왜요? 반응이 오나?”



불 한 톨 붙이지 못한 담배를 반으로 똑 접어 테이블 아래로 버린 뒤 와인 잔을 만져대던 쿠로코의 손을 잡아챘다.



“또 무슨 재미없는 소리를 하려고.”

“이번에 새로 들어온 애가 말해줬거든요. 와인 잔 끝을 이렇게 손가락으로 돌리면….”



잡힌 손을 빼낸 쿠로코는 와인 잔을 아오미네 쪽으로 밀어 붙인 뒤 세운 검지를 따라 입구를 훑었다. 약이라도 올리는 듯 신이난 목소리로 설명하던 쿠로코가 손동작과 함께 말소리까지 멈추자 시큰둥하게 바라만 보던 아오미네도 슬쩍 관심을 드러냈다.


‘보는 남자는 흥분을 한 대요.’


밀어라도 속삭이는 사람처럼 상체를 숙여 작은 목소리로 말을 전한 쿠로코는 불쾌함이 역력히 드러난 아오미네의 표정에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아오미네군은 그렇게 표정이 다 드러나서 웃겨요.”

“…뭐?”

“나랑 자고 싶으면서.”



와인 잔에 담긴 와인을 한 모금 들이킨 쿠로코는 흥분한 아오미네를 가라앉히려는 듯 살랑살랑 손을 흔들었지만 소용없었다.



“내가 오메가라 싫어요?”

“…….”



쿠로코는 아오미네가 오메가를 극도로 혐오하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가게에 올 때마다 얼굴 곳곳에 묻은 불쾌감이라던가 오메가와 닿기라도 하면 흠칫하곤 바지 위로 손을 벅벅 문대기까지 할 정도였으니 사실 모른다는 게 더 말이 되지 않았다.



“내가 갑자기 애라도 들고 올까봐?”

“쿠로코.”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세운 쿠로코는 테이블 위로 아오미네의 라이터를 올려 두고 걸음을 물렸다.



“이미 다 저질러 놓고 그렇게 내외하는 거 좀 우습다고 생각 안 해요?”

“…….”

“테츠라고 불러주는 건 역시 침대 위에서만?”



섭섭하다며 말을 덧붙인 쿠로코는 ‘다음에 보자.’는 가벼운 인사말과 함께 아오미네에게서 등을 돌렸다. 얇은 셔츠 너머로 날개 뼈 위에 새겨진 작은 문신이 보이자 아오미네는 침을 꿀꺽 삼키며 주먹을 고쳐 쥐었다. 하늘 색 머리칼이 눈앞에서 흔들리며 점점 사라지자 아오미네는 더 이상 참지 않고 벌떡 일어섰다.


큰 보폭으로 걸어 가 쿠로코의 손목을 잡아 채 몸을 돌리자 쿠로코는 마치 이 상황을 예상이라도 한 듯 여유롭게 미소를 지은 채였다. 그런 쿠로코의 얼굴 곳곳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아오미네는 거칠게 입을 맞추었다.



‘…테츠.’


입술이 맞닿을 즈음 사이로 새어나온 아오미네의 속삭임에 쿠로코는 환하게 웃으며 화답했다.






vol.3





이 글은 모 야망가에서 영감을 받았다. 형의 아내를 사랑하는 남자 주인공한테서. 어쨌든 나는 아오미네 앞에서 절박해지는 쿠로코가 좋고, 그런 쿠로코를 자기 좋은 대로 이용하고 손아귀에 쥐는 아오미네가 좋다. 그런 설정은 오메가버스에서 정점을 찍기도 하고.







타에코가 병으로 끝내 눈을 감았을 때, 그녀의 나이는 겨우 서른하고 셋이었다.



타에코가 아팠던 것은 요 며칠 새의 일은 아니었다. 타에코는 원래부터 몸이 약했다. 위로는 오빠 셋, 아래로는 남동생 하나를 둔 타에코는 집안에서 어느 누구에게도 관심 받지 못했다. 유일하게 타에코를 따르던 남동생마저 병환이 깊어진 뒤로는 부모님의 감시가 깊어져 가까이에서 볼 수조차 없게 되었다. 부모님에게 언제 죽어도 놀라지 않을 정도로 깊은 타에코의 병보다 더 중요했던 것은 네 아들들이었다. 무관심과 외면에 지쳐가던 타에코의 혈색이 까맣게 죽어 갈 즈음, 타에코는 이름 없는 종의 아들놈과 혼삿길에 올랐다. 집안일을 도맡아하던 머슴 종의 유일한 아들이었던 쿠로코는 그렇게 타에코의 남편이 되었다.



“누나는 형을 참 좋아했어요.”

“…처남.”



타에코와 달리 집안의 관심과 사랑을 독차지하고 자랐던 아오미네는 스물이 되던 해 집을 떠났다. 타에코와 동갑인 쿠로코가 혼사를 치르고 집에 들어와 살았던 것이 스물다섯이었으니 아오미네가 열다섯일 때였다. 파릇파릇한 잔디가 마구 엉킨 정원 한 가운데에서 백색의 하복을 나풀거리고 입고 섰던 남중생의 모습. 쿠로코는 제대로 된 짐 하나도 없이 다 헤진 신발을 신고 대문을 넘은 자신을 바라보며 넋이라도 놓은 듯 쥐죽은 듯 서 있던 그 소년의 모습을 아직도 잊지 못했다.



“형은 여기에서 살고 싶어요?”

“나는… 여기가 아니면 갈 곳이 없…….”

“그렇겠죠.”



형이 손에 쥔 거라곤 이미 죽은 누나 뿐 이었으니까.


자조적인 음성에 버석하게 말라붙은 쿠로코의 양 손이 움찔 떨렸다. 아오미네에게 완전히 닿지 못한 채 방바닥만 살피던 쿠로코의 눈이 조금씩 위로 향했다. 매끈하게 빠진 턱 끝을 따라 시선을 계속 올리자 뚫어져라 쿠로코를 바라보던 아오미네와 시선이 닿았다.



“이제는 누나가 아니라 형들한테 달라붙고 싶어요?”



크고 굵직한 손을 들어 입가를 쓱쓱 비비던 아오미네가 헛헛한 웃음을 짓곤 비아냥댔다. 아오미네의 말에 쿠로코는 무슨 말을 하는 거냐며 발끈하고 고개를 완전하게 쳐들었지만 이미 아오미네는 뒤돌아선 뒤였다. 대충 차려 입은 검은 상복이 넓은 등에 꽉 들어찬 뒷모습을 바라보던 쿠로코는 저도 모르게 마른 침을 몇 번이나 삼켰다.



“아니면. 형들은 이제 늙었으니까 나한테라도 달라붙으려는 건가?”

“처남!”

“그렇게 부르지 마.”

“…….”

“더러운 오메가 주제에.”



몸은 돌아선 그대로 고개만 반쯤 돌려 뒤에 선 쿠로코를 힐끗 곁눈질하는 아오미네는 난데없이 등장한 오메가라는 말에 벙찐 채로 굳어버린 쿠로코의 모습을 바라보며 우습다는 듯 가볍게 웃었다.



“형은 몰랐나봐.”

“…….”

“그깟 약 한 알 삼킨다고 그 더러운 냄새가 사라지진 않지.”



오메가 냄새라는 게 그렇잖아. 구질구질하고 질척해서 기분 더럽지.


뒤이어 붙은 채로 쏟아지는 아오미네의 목소리에 쿠로코는 위태롭게 올려쌓은 돌탑이 쓰러지는 것 마냥 푹 바닥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




쿠로코의 아버지였던 남자는 오메가였던 여자를 마음에 품었다는 이유만으로 쿠로코까지 받아 주어야했다. 쿠로코는 여자가 겪은 핍박과 경멸어린 시선들의 결과였다. 누군지도 모르는 남자의 아이이자 자신과 마찬가지로 오메가의 피를 타고난 아이. 그래서 여자는 쿠로코를 버리지 못했고, 남자 역시 여자를 버릴 수 없었다. 그렇게 세 사람은 가족이 되었다.



생각해보면 쿠로코가 이 넓은 집에 팔린 것은 필연적인 일이었다. 남자가 일을 나갔던 사이 여자는 오메가라는 이유만으로 동네 사람들에게 돌팔매질 당하며 개죽음을 당했다. 남자와 쿠로코의 유일한 연결 고리였던 여자의 죽음은 많은 것을 변하게 했다. 남자는 더 이상 쿠로코를 아들로 생각하지 않았고 치워 버리고 싶은 경멸스러운 오메가라 여겼다.



여자는 자신이 죽는 순간에도 벽 한 켠 옷장에 숨겨 놓은 쿠로코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피로 얼룩진 얼굴이 퉁퉁 부은 채로 방에 너부러진 여자는 두 눈이 잔뜩 커진 채로 벌벌 떠는 쿠로코에게도 들릴 만큼 큰 소리로 꾸역꾸역 소리쳤다.


‘아무에게도 오메가라는 걸 들키지 말고 살아.’


한 자, 한 자 내 뱉은 말이 뚝 끊기고 나서야 쿠로코는 확실하게 깨달았다. 오메가가 가질 수 있는 것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심지어 그것이 제 인생이라 할지라도.



변기에 처박은 얼굴을 힘겹게 들어 올린 쿠로코는 레버를 내리며 문에 기대 주저앉았다. 아오미네의 갑작스러운 말에 무작정 입으로 쑤셔 넣은 알약이 목구멍을 채 넘어가지 못하고 넘어와 모두 게워냈다. 약을 모두 게워낸 뒤에도 그치지 않고 이어지는 구역질에 속이 답답해 쿠로코는 주먹을 말아 쥐고 가슴을 쿵쿵 두드렸다.



‘더러운 오메가 주제에.’

‘그깟 약 한 알 삼킨다고 그 더러운 냄새가 사라지진 않지.’



귓가에서 쉬이 사라지지 않는 아오미네의 목소리 탓인지 말아 쥔 주먹이 느슨하게 풀렸다. 쿠로코가 오메가라는 사실이 발각당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죽은 아내도 쿠로코가 오메가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기 손으로 용변조차 가리지 못할 만큼 위독한 상황에서도 짐승처럼 오메가의 냄새를 맡고 킁킁대던 아내를 떠올리던 쿠로코는 입술까지 달달 떨며 비적거리며 바닥에서 일어섰다. 욕망에 차 번들거리던 아내의 눈빛 위로 자신을 노려보던 아오미네의 서늘한 눈빛이 겹쳐 떠오르자 쿠로코는 사색이 되어 채 잠그지도 못한 문을 밀어 열고 세면대로 걸음을 옮겼다.


콸콸 쏟아지는 물을 양 손으로 받아 입 안을 수십 번이나 헹궈 낸 쿠로코는 물을 멈추곤 젖은 손을 털며 거울을 바라보았다. 몇 번이나 계속 된 헛구역질 탓인지 새빨갛게 충혈 된 눈동자가 꼭 죽기 전의 제 어미와 꼭 닮은 모습이었다.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쿠로코는 물기가 마른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입가를 가로 막은 손 틈 새로 뜨끈한 숨이 삐져나왔다.



“그렇게 하면 오메가 냄새가 지워져요?”

“……!”



화장실 입구 쪽에서 들리는 음성에 흠칫 놀란 쿠로코가 뒤를 돌자 아오미네는 한 손을 가볍게 들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한 걸음 가까이 다가오는 아오미네를 바라보던 쿠로코는 반사적으로 걸음을 물렸지만 세면대에 막혀 뒷걸음질 칠 수 없었다.



“도망가지 마요. 내가 형을 잡아먹기라도 하나.”



절망에 빠진 표정으로 아오미네를 올려다보던 쿠로코는 여전히 이어지는 구역질 탓에 입을 틀어막기 위해 손을 올려 들었지만 아오미네가 손목을 잡아채는 바람에 꼼짝도 하지 못했다.



“놔…줘.”

“형은 잔뜩 쑤셔 줄 알파가 필요하니까.”

“…아오미네군!”



아오미네의 말에 머리까지 지끈거리자 쿠로코가 빽 소리를 질렀다. 쿠로코에게서 나온 순간적인 기세에 아오미네는 놀라는 척도 않고 한 쪽 눈썹을 치켜세우며 재밌다는 표정을 짓기만 했다. 어떤 것도 아오미네를 누를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한 쿠로코는 벌벌 떨리는 팔을 비틀어 손이라도 빼내고자 온 몸을 꿈틀거렸다.



“내 옆에 있어요.”



도망치지도, 그럴 생각도 하지 말고 그냥 내 옆에만 있어요.


손목을 움켜 쥔 손에 더 세게 힘을 준 아오미네가 별안간 쿠로코를 제 품으로 끌어 당겼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에 멍해진 쿠로코가 힘없이 아오미네의 품 안으로 끌려 들어가자 아오미네는 넉넉하게 벌어진 쿠로코의 셔츠 틈으로 고개를 묻었다.



“도망가면 죽여 버릴 테니까.”



오메가가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살을 부대고 함께 했던 아내의 죽음에 대한 슬픔 역시도 오메가에게는 사치였다. 참담한 현실을 다시금 깨달은 쿠로코가 숨결 틈새로 스미는 묵직한 목소리에 절로 온 몸에 힘이 빠져 눈을 감았다.


곧, 바르르 떨리는 쿠로코의 속눈썹과 눈두덩이 위로 아오미네의 숨결이 닿았다.